요약: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정식 통과되었다. 크게 기후 관련 투자, 의료비 부담 완화, 재원 마련 방안 등이 담겨 있다. 법안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법안의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정식 통과되었다. 크게 기후 관련 투자, 의료비 부담 완화, 재원 마련 방안 등이 담겨 있다. 법안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법안의 이름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 PWBM(Penn Wharton Budget Model)은 2031년까지 2,48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감축한다는 효과에는 동의했으나, 인플레이션에 미칠 효과는 0에 가깝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 법안은 바이든 행정부의 “더 나은 재건 (Build Back Better)” 국정과제 하에서 코로나 구호법안, 물적 인프라법 이후 세 번째로 추진되었으며, 2021년 11월 무산된 국가재정법안의 축소판으로 청정 에너지 투자 확대 및 재정적자 축소, 의료비용 절감을 통한 물가억제에 목적이 있다.
재정지출은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 강화 지출이 차지하고 있으며 건강보험개혁법 확대지원 기간 3년 연장안 등 공공보건 지원안도 포함되어 있다. 재원확보는 최저법인세(15%) 도입, 국세적 세무집행 강화, 처방약 가격책정 개혁 등을 통해 재정지출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고 재정적자 축소를 모색하고 있다.
법안의 내용을 뜯어보면 ‘자립’과 ‘재편’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온다.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통한 에너지 자립과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이 정책의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당장 2023년의 물가 상승률을 2%로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나, 에너지 자립과 공급망 재편의 칼 끝은 물가 안정을 가리키고 있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기존의 기후 변화 대응 관련 정책, 리쇼어링 관련 정책들이 시행 속도가 더뎠던 것과는 달리 금번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된 변화는 빠르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플레이션에는 인구, 생산성, 글로벌 밸류체인, 주택가격 및 원자재 가격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 단기 및 중장기 물가 상승률에 가장 큰 영향은 에너지 가격이다. 기-승-전 유가라는 표현처럼, 지난 3월과 6월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던 것도, 이번 7월 물가 상승률이 둔화된 것도 유가의 상승과 하락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에너지 관련 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도 같은 맥락이다. 전체 4,370억 달러 중 84%인 3,690억 달러가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 관련 부문에 지출될 계획이다. 에너지 가격뿐 아니라 최근 유럽의 에너지난은 에너지 안정적인 수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EU의 전력 생산량은 평년 수준의 30%나 미달할 정도로 부족한 상황이다. 전쟁과 더불어 폭염이 수력, 풍력에서 생산되는 전력량 감소로 이어졌으며, 고온이 수온 상승으로 이어져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과 더불어 자립과 물가 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다른 하나는 바로 자국내 공급망이다. 미국의 고물가에는 에너지 가격 상승뿐 아니라 공급 병목, 특히 미국내 공급병목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미국은 글로벌 밸류체인의 정점에서 아웃소싱을 통해 비용을 낮추고 더 많은 이익을 올리는 가운데 R&D 등 무형투자를 확대해왔다. 다만 지난 2년 동안 미국은 국내 설비가 부족했을 때 겪을 수 있는 공급난과 가격 급등을 압축적으로 경험했으며, 미국의 전략은 자국을 중심에 둔 밸류체인의 구축으로 전환되었다.
리쇼어링이라는 단어가 촌스럽게 들릴 정도로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은 오래된 슬로건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안보보다 미국 밖에 공장을 짓는 것이 훨씬 이익이었기 때문에 정부의 여러 가지 인센티브에도 미국내 설비투자는 둔화되는 흐름이 지속되었다. 실제 국가별 자본스톡 데이터, 즉 생산설비 능력을 비교해 보면 1) 미국의 자본스톡이 2010년 이후 성장률을 크게 하회했으며, 2) 중국의 자본스톡이 2015년을 기점으로 미국을 훨씬 추월하였다. 중국과의 대결, 병목현상으로 인한 생산 부진과 가격 급등을 모두 겨냥한 것이 바로 공급망 재편 정책인 셈이다.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은 인플레이션 감축을 넘어 에너지 및 공급망 자립 혹은 재편에 대한 구상인 만큼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한다. 당장 내년 미국 물가 성장률을 2%로 낮추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기업과 교역 파트너들의 변화를 앞당길만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對中 수출 비중이 여전히 1/4가량을 차지하는 만큼 미국을 중심에 둔 공급망 재편은 당장 경제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미국향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추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 기업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기회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